자선과 연민의 대상에서 권리 주체로
‘장애인’이라는 말은 일상에서 익숙하지만, 사실 이 말은 역사 속에서 국가와 사회가 만들어낸 법적 분류이기도 하다. 장애를 입은 사람을 따로 구분하고, 그들에게만 적용되는 지원제도와 차별금지 규칙을 두는 일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사회가 누구를 시민으로 인정하고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이 글은 장애인을 법적으로 구분하고 보호·지원하는 제도가 어떻게 생겨났고, 오늘 우리의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정리해보려는 시도이다.
1. 왜 ‘장애인’을 법으로 구분하는가
장애를 법적으로 정의하고, 그에 따라 “장애인”이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복지와 지원의 대상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차별금지와 권리 보장의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이다.
한국의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을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로 규정하고,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 예방·의료·재활·보호·교육·고용·수당 지급 등의 기본 방향을 담고 있다.(법령정보센터) 이 정의에 따라 활동지원, 보조기기, 각종 연금·수당, 요금 감면, 교육·고용상의 편의제공 같은 제도가 설계되고, “등록장애인”이라는 법적 지위를 기준으로 수급 여부가 결정된다.
한편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은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권리 침해에 대한 구제절차를 규정한다. 이 법 역시 장애를 신체·정신적 손상이 장기간 일상·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로 정의하면서,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EncyKorea)
정리하면, 복지법은 “어떤 사람에게 어떤 지원을 줄 것인가”를 정하는 법이고, 차별금지법은 “어떤 사람을 상대로 장애를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되는가”를 정하는 법이다. 두 법 모두 “신체·정신적 손상 + 장기간 + 생활·사회참여의 상당한 제약”이라는 공통 축 위에 서 있다.
2. 세계사적 배경: 자선과 보호에서 권리와 참여로
장애인을 법으로 따로 구분하고 지원하는 제도는 근대 복지국가와 장애인 인권 체계의 형성과 함께 만들어졌다.
2-1. 가난법·자선의 역사
전근대 사회에서 장애인은 보통 노인, 병자, 고아 등과 함께 빈민·구휼의 대상으로 묶였다. 유럽의 가난법 체계는 “일할 수 있는 빈민”과 “노인·장애인처럼 돕길 ‘합당한 가난한 사람’”을 구분해, 공동체가 보호해야 할 집단을 정하려 했다. 한국에서도 조선시대 구휼제도에서 노인과 병자·장애인을 겨울철 양식·의복 지원 대상 등으로 포함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이런 구분은 “권리”라기보다는 “동정과 자선의 우선순위”에 가까웠다.
2-2. 산업화·전쟁과 “국가가 만든 장애”
산업혁명과 전쟁은 대량의 장애인을 만들어냈다. 공장·광산 노동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1·2차 세계대전에서 부상을 입은 상이군인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가족·자선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다. 이 과정에서 각국은 재해·전쟁으로 장애를 입은 사람에게 연금과 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를 만들기 시작했고, “국가가 만든 장애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다른 유형의 장애까지 점차 확장되었다.(Encyclopedia Britannica)
2-3. UN 인권 체계와 장애인 권리
1975년 UN은 「장애인 권리 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s of Disabled Persons)」을 채택하며,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국제적으로 처음 명시했다. 이 선언은 장애인을 “신체·정신 능력의 결함으로 인해 정상적인 개인·사회생활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정의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과 같은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했다.(위키피디아) 다만 여전히 “정상적인 생활을 스스로 유지하기 어려운, 보호해야 할 존재”라는 시각이 강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06년 채택된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이다. 이 협약은 장애를 장기적인 신체·정신·지적·감각 손상이 다양한 장벽과 상호작용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사회참여를 방해하는 상태로 정의한다.(UN) 요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장애를 개인의 질병·결함만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환경적 장벽과의 상호작용으로 본다는 점, 둘째, 장애인을 자선·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인권을 동등하게 향유해야 할 권리 주체로 본다는 점이다. 협약은 국가가 장애인의 평등·비차별, 접근성, 자립생활, 이동, 교육, 정치참여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구체적 의무를 부과한다.(UN DESA)
3. 한국에서의 제도 형성: 보호 중심에서 차별금지·권리 중심으로
한국에서 장애인을 법적으로 구분하고 보호·지원하는 체계는 대략 네 단계로 압축할 수 있다.
3-1.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 첫 기본법, 시설·재활 중심
UN이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로 지정하면서 각국에 장애인 복지정책 강화를 권고했고, 한국 정부도 이를 계기로 장애인 정책을 본격화했다.(archives.go.kr) 1981년 제정된 「심신장애자복지법」은 장애 발생 예방과 재활, 생활 보호 등을 목적으로 한 첫 기본법이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직업재활시설·생활시설 등 시설 중심 정책이 주를 이루었고, 장애인을 사회 안으로 통합하기보다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법령정보센터)
3-2. 1989년 장애인등록제·「장애인복지법」 개정: 등록과 등급
1989년 정부는 전국적인 장애인등록제를 도입하고,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장애인복지법」으로 전부 개정했다.(KIHASA Repository) 장애 정도를 1~6급으로 나누어 복지급여·서비스의 기준으로 삼는 등급제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기의 정책은 “등록하고 등급을 매겨, 등급에 따라 복지를 차등 제공하는 체계”에 가깝고, 여전히 보호·재활 중심의 색채가 짙었다.(법령정보센터)
3-3. 2000년대 이후: 장애인복지법 정비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장애인복지법」은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를 명확히 하고,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통합, 자립생활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법령정보센터) 이와 동시에 장애인운동은 “복지”만이 아니라 “차별금지”와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2007년 제정, 2008년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은 교육·고용·재화·서비스 이용·행정·사법 절차 등 거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시정명령·손해배상·집단소송 등 권리구제 수단을 규정한다.(EncyKorea) 무엇보다 이 법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입법운동으로 제정된 법이라는 점이 자주 강조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보도자료에서 이 법을 “장애인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자 하는 희망의 표현”이라고 설명한다.(국가인권위원회)
3-4. 최근 쟁점: 등급제 폐지와 서비스 중심으로의 전환
1~6급 장애등급제는 “숫자 몇 개로 사람의 삶을 자르는 제도”라는 비판 속에서 단계적으로 폐지되었고, 현재는 필요한 서비스별로 욕구·필요를 평가하는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체계로 전환 중이다.(KIHASA Repository) 이는 “장애가 몇 급이냐”보다 “어떤 지원이 실제로 필요하냐”에 초점을 옮기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예산 규모·서비스 접근성·지역 격차 등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장애인권 운동에서는 여전히 권리의 실질적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4. 법적 구분의 사회적 의미: 보호와 권리, 그리고 통제와 낙인
장애인을 법적으로 구분하고 지원하는 제도는 분명 보호와 권리 보장을 위한 도구이지만, 동시에 통제와 낙인의 도구가 될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4-1. 보호와 권리 보장의 도구
첫째, 이 제도는 자원을 ‘권리’의 형태로 연결하는 관문이다. 활동지원, 보조기기, 장애연금, 교통·통신 요금감면, 교육·고용 편의제공, 탈시설·자립생활 지원 등은 모두 “장애인”이라는 법적 지위와 직접 연결된다. UN CRPD는 국가가 장애인의 자립생활, 이동, 교육, 건강, 정치참여 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며, 장애인을 동등한 인권 주체로 본다.(UN DESA)
둘째, 법적 정의와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가시화하고 제어하는 도구이다. 예전에는 서비스 거절, 무시, 모욕이 “예의 문제”로 처리되던 일들이, 이제는 법 위반·권리 침해로 다뤄질 수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학교, 직장, 공공기관, 병원 등에서 “어디까지가 정당한 차별이 아니며, 어떤 편의제공을 해야 하는지”를 법적 언어로 적어 넣었다.(EncyKorea)
셋째, 법적 구분은 장애인을 정치적·사회적 주체로 등장시키는 효과를 만든다.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집단이 형성되고, 그 집단이 이동권, 탈시설, 자립생활권, 교육권 등을 요구하는 정치적 행위자로 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주도한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은 그 대표적 사례다.(국가인권위원회)
4-2. 통제와 낙인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같은 제도는 여러 문제도 만들어낸다.
첫째, 등록·판정 체계는 언제나 “누가 진짜 장애인이냐”를 가르는 선 긋기를 포함한다. 복지 재정을 통제하려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덜 심한 사람’으로 분류하고, 지원에서 배제하려는 유인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장애로 인해 분명히 어려움이 있지만, 법적 기준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생긴다.
둘째, 전통적인 **의료 모델(medical model)**은 장애를 개인의 질병·결함으로만 보고, 치료·교정·관리의 대상으로 취급한다.(위키피디아) 이 관점이 제도에 강하게 스며들면, 장애인은 사회를 바꾸는 주체라기보다 “진단 받고, 등급을 부여받고, 관리되는 대상”으로 머물게 된다.
셋째, 장애인등록증·복지카드는 권리의 열쇠이면서도 동시에 “당신은 비장애인과 다른 존재”라는 낙인의 표식이 될 수 있다. 시설 수용, 특수학교·특수학급, 보호작업장 등은 한편으로는 보호의 장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애인을 일상적 공간과 분리시키는 구조를 만들어 왔다.
5. 의료 모델에서 사회 모델로: “사람이 아닌 사회가 장애를 만든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장애인운동이 제시한 것이 **사회 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이다. 사회 모델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손상(impairment) 자체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놓은 물리적·제도적·태도적 장벽이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만든다고 본다. 계단만 있는 건물, 수화통역 없는 공공 서비스, 편견에 찬 채용 관행 등, 사회의 설계 방식이 장애를 생산한다는 것이다.(disabilitynottinghamshire.org.uk)
반대로 전통적인 의료 모델은 장애를 개인의 신체·정신적 문제로 보고, 의학적 개입을 통해 “고치거나 정상에 가깝게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둔다.(위키피디아) 사회 모델은 이 관점에 맞서, “사회가 바뀌면 장애가 만들어내는 제약도 줄어든다”는 반대 방향의 질문을 던진다.
UN 장애인권리협약은 이 사회 모델을 공식화하면서, 장애를 “장애가 있는 개인과 사회적 장벽의 상호작용”으로 정의하고, 장애가 “진화하는 개념”임을 명시한다.(UN DESA) 이는 각국의 장애 관련 법·정책이 앞으로 개인을 고치는 데서 사회를 고치는 방향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는 셈이다.
6. 맺음말: ‘장애인’이라는 법적 구분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장애인을 법적으로 구분하고 보호·지원하는 제도는 분명히 필요하다. 이 제도가 없으면, 신체·정신적 손상 때문에 일상과 사회참여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은 시장과 가족의 힘에만 의존하게 되고, 최소한의 생존과 참여조차 보장받기 어렵다. 반대로, 이 제도가 존재하는 덕분에 많은 장애인이 활동지원, 보조기기, 교육·고용 기회, 이동권 보장 등을 통해 삶의 선택지를 넓혀왔다.
그러나 동시에, 이 제도는 “국가가 정한 기준 안에 들어오는 사람만 시민으로 인정되는 방식”을 강화할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누가 장애인인지, 어디까지를 지원할 것인지, 어떤 장벽을 제거할 것인지는 결국 예산과 권력, 사회적 감수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애인 법제의 사회적 의미를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을 법적으로 구분하고 지원하는 제도는,
한편으로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사회참여의 권리를 열어주는 최소한의 조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끊임없이 협상하는 정치적 장이다.앞으로 필요한 것은 “누가 진짜 장애인이냐”를 가르는 선을 더 정교하게 긋는 일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장벽이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지 더 정확히 드러내고, 그 장벽을 어떻게 낮출 것인지 토론하는 일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법과 제도는 단순한 보호장치가 아니라, 장애인이 스스로 자신의 삶과 사회를 바꾸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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